중국과 일본 간 타협이 불가능한 센카쿠(다오위다오)
일본하고 중국 간에 국교가 수립된 이후 한참 동안은 센카쿠를 놓고 중국과 일본 간의 갈등은 봉합이 되고 잠잠해집니다. 그러다가 1992년 2월에 중국은 제7차 전국인민자 대표자 회의를 엽니다. 그러면서 그 회의에서 등소평 씨가 말했던 그 조금 이 얘기를 영유권 논의가 수면 아래로 가라앉자 그 얘기를 다시 꺼냅니다. 그러면서 그 회의에서 다오위다오에 대한 영유권을 주장합니다. 그러고 좀 있다가 1996년 2월 중국은 다오위다오 인근에 대한 대대적인 유전 탐사작업을 실시합니다. 당연히 여기에 대해서 일본 정부와 일본의 극우 단체는 반발하고 그리고 일본의 극우단체는 센카쿠가 자국의 영토라고 하는 것을 대 내외 과시하기 위해서 센카쿠에다가 등대를 설치하고 희생자 위령비를 세우고 이렇게 됩니다. 여기에 대해서 이렇게 또 중국과 일본은 첨예하게 갈등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1997년 7월에 홍콩이 영국에서부터 이제 중국으로 반환이 됩니다. 그러면서 중국이 내건 모토 중에 하나가 하나의 차이나, 원 차이나, 하나의 중국을 강조를 하고요 하나의 중국이라는 관점에서 지금 논란이 되고 있는 일본과 논란이 되고 있는 다오위다오, 그다음에 남중국해에 있는 난사군도 이런 섬들에 대한 영유권 주장을 재차 천명합니다.
방공식별구역 선포
그 후에 2010년에는 중국어선이 일본이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센카쿠에 들어가게 되고 그 들어간 배가 일본 해상보안청에 나포되고 그러면서 선장이 구속되는 이런 사건이 발생합니다. 그러다가 아까 제가 말씀드린 것처럼 센카쿠에 들어온 선장 해프닝은 17일 만에 끝난다고 했잖아요. 그러고 좀 있다가 일본은 전격적으로 센카쿠의 국유화를 선언합니다. 그때가 2012년입니다. 당연히 일본이 센카쿠의 국유화, 이것은 일본의 땅이라고 하니까 중국은 무슨소리냐고 거세가 반발합니다. 그러고 중국은 다음 해 2013년에 센카쿠, 자기들 말로는 다오위다오, 센카쿠를 포함한 동중국해 일원해를 자기들의 방공식별구역으로 포함을 시킵니다. 방공식별구역으로 포함시켰다는 이야기는 뭔 말이냐 하면 그 하늘은 중국 하늘이라 하는 메시지를 일본에게 보내게 됩니다. 그리고 나서 중국 군함이 아주 보란 듯이 다오위다오 인근을 순찰하고요, 그리고 중국의 잠수함이 그곳을 가고 그러면서 중국과 일본 간에 영토 갈등이 더 첨 해집니다. 이 센카쿠, 중국말로 다오위다오를 놓고 일본과 중국이 벌리는 이 영토전쟁은 사실 순수한 영토전쟁, 영토 수호 차원 이런 게 아니라 센카쿠 주변 해변에 매장되어있는, 분포되어있는 해저자원에 대한 정치적, 경제적 이해관계도 맞물려 있습니다. 무슨 얘기냐면 이 센카쿠 주변의 해역에는 조그마한 대륙붕, 뱅크라고 하는 대륙붕이 잘 발달돼있어서 아주 어족이 풍부합니다. 뿐만 아니라 그해 역에는 석유가 대량으로 매장되어있습니다. 실제로 대만이 미국계 회사에게 의뢰해서 1969년에 탐사작업을 해본 결과 센카쿠 인근 해변에는 100억 ~ 1000억 배럴의 원유가 매장되어 있는 것으로 추정합니다. 상당한 양입니다. 따라서 일본은 그 자원이 탐났고 지금 현재 실효적으로 지배하고 있는 일본은 그 자원 때문에 센카쿠를 영토 지역화, 중국으로 내줄 수 없는 그런 상황이 돼 버렸습니다.
센카쿠 지역의 중요성
센카쿠는 대단히 국제정치학적, 군사적인 측면에서 중국과 일본의 이해관계가 맞물리는 현장입니다. 무슨얘기냐면 중국이 태평양으로 나오려면 동중국해를 거쳐야 합니다. 그 동중국해라고 하는 곳이 대만과 오키나와 아래쪽에 있는 그 해역을 동중국해입니다. 이 동중국해에 대한 해역을 차지하고 그리고 태평양으로 나와야 됩니다. 그 태평양으로 나오려고 하면 아주 중요한 거점 중에 하나가 센카쿠입니다. 센카쿠가 일본 땅이냐 중국 땅이냐에 따라서 중국어선이 태평양으로 나가는 게 쉽냐. 쉽지 않느냐가 결정되기 때문입니다. 중국 입장에서는 대만뿐만 아니라 대만과 오키나와 사이에 있는 다오위다오 영유권을 필히 주장을 해야 하는 그런 상황입니다. 뿐만 아니라 일본은 다오위다오를, 자기들 말로 센카쿠를 절대로 중국에 내 보낼 수가 없습니다. 왜냐면 다오위다오, 센카쿠가 중국 영토가 되는 순간 중국은 마음대로 태평양으로 나오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 일본은 홋카이도 위쪽, 지금의 블라디보스토크를 베이스로 해서 주둔하고 있는 러시아에 극동함대, 또 동중국해에서 호시탐탐 태평양으로 나오려고 하는 중국 함대. 이 두 해상세력 때문에 자국에 영유권 관리가 쉽지 않게 됩니다. 따라서 일본은 센카쿠를 중국에게 절대로 활약할 수 없는 그런 상황입니다. 일본이 가지고 있는 섬나라라고 하는 지중학적 위치가 또 어떤 해양 군사적인 측면에서 센카쿠를 중국에게 내줄 수 없는 그런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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