감자대기근과 민족주의 운동의 등장, 에이레 독립
아일랜드사람들이 특히 카톨릭들이 이런 불합리한 상황에 놓여 있는 것에서 더 큰 어려움을 겪게 되는 것은 기근으로 인한 상황이 되는데요. 그걸 보기 위해서는 감자를 한번 생각해봐해요. 감자. 감자는 우리가 굉장히 흔하게 먹는 별 볼일 없는 그런 작물 아니야? 라고 생각을 할 수 있는데요. 유럽 사람들이 기존에 먹었던 빵을 만들어 먹었던 밀이라던가 호밀, 이것에 비해서 감자는 열량을 훨씬 더 많이 제공해줄 수 있는 굉장히 유용한 작물입니다. 동일한 땅에 요만한 땅에 밀을 심었을 때, 그 땅에 감자를 심었을 때 감자를 심게 되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을 배불리 먹일수 있는 굉장히 좋은 작물중에 하나가 저 감자에요. 거기에다 감자는 험한날씨에도 잘 자랄수 있잖아요. 그러다보니 영국 브리튼섬이나 그리고 더 험한 땅인 아일랜드 같은 경우에는 감자라는 것은 구원의 작물이라고 보시면 됩니다. 근데 감자가 유럽에 전해진 게 그렇게 오래되지 않았어요. 감자 자체가 아메리카, 메소아메리카 푸드라고 보실 수 있죠. 신대륙 작물입니다. 그래서 신대륙을 발견하고 나서야 감자라는 작물을 만나게 된 거구요. 감자를 처음에 보자마자 이렇게 데리고 왔느냐 데리고 온 것도 아니에요. 사람들이 보기에 감자가 예쁘지도 않고 맛있어 보이지도 않아요. 그러다보니 얘를 바로 도입을 한 게 아니고 한 백여년 정도 지나서야 식용으로 아 감자를 쓸수 있구나 , 이걸로 우리가 기근을 해결할 수 있구나 하는 거를 깨닫게 되는 거죠. 그래서 1600년대쯤 되면은 조금씩 조금씩 재배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재배를 하지만 이게 뭐 고급 음식이라던지 너무너무 맛있는 음식 이런 입장은 아니었어요. 그냥 굶지 않으려고 먹는 그런 작물이였으나 18세기 쯤 되면 정부에서 이걸 감자재배를 장려하기 시작해요. 감자를 먹음으로써 사람들의 기근을 해소할 수 있다는 거를 정보를 깨닫게 된거죠. 이제 그러면서 아일랜드에서도 18세기쯤 되면은 감자가 주요 주식으로 자리를 잡게 됩니다. 우리가 영국의 전통음식이라고 얘기하면 피쉬앤칩스라고 많이들 대답하세요. 저 칩스가 저 감자죠. 주식입니다. 피쉬는 메인음식이 되는거고 감자는 우리의 밥과같은 존재로 자리잡기 시작할때가 저때라고 보시면되요. 그 이전에는 감자가 없었어요. 감자를 먹기 시작하면서 아일랜드의 기근이 사라지기 시작을 해요. 그러면서 인구가 폭발적으로 증가를 하게 됩니다. 이거는 아일랜드 뿐만아니라 다른 지역도 마찬가지에요. 그러면서 인구가 이렇게 많이 늘어나면 은 우리가 어떻게 다 먹여살리지. 하면서 매서스가 인구는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하는데 식량생산은 폭발적으로 증가해서 우리는 다시 인구를 줄여야될거다. 라고 얘기를 한 때가 바로 이시점이라고 보시면은 됩니다.
감자와 아일랜드 인구증가와 재감소
감자가 들어오고 나서부터 인구가 거의 2배가량 증가를 하게 됩니다. 그리고 그 사람들은 감자를 먹으면서 열량을 보충을 하게 되는데 감자농사가 망했어요. 1800년대 중반에 감자 잎마름병이라는 게 발생하고 그게 아일랜드 전역을 강타를 합니다. 그래서 감자농사가 제대로 안됐어요. 먹을게 없어요. 당장 먹을게 없어요. 당장 먹을게 없는데. 이때 당시 아일랜드인의 상황을 생각해보시면 땅을 다 뺏겨서 소작농의 상황이잖아요. 소작농의 상황인데 내가 먹을 것도 없고 갔다 팔 것도 없어요. 근데 나는 계속해서 세를 지급을 해야하는거죠. 잉글랜드사람들, 혹은 개신교도들한테 나는 계속해서 땅을 사용한 대가를 지불해야되는데 나는 나 먹을 것도 없는데요. 그런데 이사람들은 계속해서 세를 내라고합니다. 그러면서 도대체 이것은 사람 살라고 하는건지 죽으라고 하는 것인지 이런상황에도 막다른 골목에 놓이게 됩니다. 아일랜드사람들이. 감자 잎마름병이 발생하고 거기서 몇 년 지나지 않아 유럽에서 또 콜레라가 유행을 하게 되요. 전염병이죠. 전염병이고 19세기 초반, 중반의 상황에서는 개인위생이라던가. 더군다나 잘 살지 못하는 아일랜드사람들한테의 이 콜레라가 퍼지는 것은 너무나도 당연한 상황이 됩니다. 그러면서 아일랜드 사람들이 인구가 굉장히 줄어들게 되요. 이게 모두다 사망한 것은 아니구요. 다수는 신대륙으로 이주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아일랜드계 미국인 마을이 여기저기 많이 들어서게 되는 상황이 되구요. 아일랜드 안에서는 엄청나게 많이 줄어들게 되요. 아일랜드의 인구가 이렇게 줄어들게 된 원인, 일단 소작농이였는데 농사가 망했어요. 농사가 망해서 먹고살게 없어요 근데 세는 계속 내야되요. 자, 근데 세를 못냈어요 그럼 더 이상 임대를 못해요. 그럼 다음부터 농사를 못 지어요. 농사짓던사람이 농사를 못짓게되면 이제 뭐를 해야 될까요? 생계수단을 잃어버리게 되는거죠. 그럼 잉글랜드 정부에서는 이들을 지원을 해줘야하는데 잉글랜드 정부에서는 지원을 해주지 않습니다. 그러면은 지주들은 이들에게 뭔가 시혜를 베풀었냐. 지주들도 막 별로 뒤돌아 서있어요. 이러면서 아일랜드사람들은 이때부터 민족주의가 더 강하게 반응되기 시작해요. 잉글랜드사람들은 우리를 전혀 도와주지 않는 구나 잉글랜드를 우리가 의지하며 살수가 없겠구나. 라고 하는 것을 절실하게 깨닫게 됩니다. 이제 그러면서 아일랜드에서 민족주의 운동이 19세기 중반이 되면은 굉장히 활발하게 벌어지게 됩니다. 민족주의 운동은 크게 두 가지 주제라고 보시면 되요. 하나는 땅을 빼앗겼기 때문에 우리가 이렇게 서러움을 당하고 소작농의 위치에서 이렇게 살기가 어려워졌어요. 이제 그러면서 소작농 연맹이라던지 자치운동 이런 것들을 통해서 토지를 확보하고자 하는 투쟁을 합니다. 그리고 또하나는 이제 정치적인 투쟁인 독립운동을 하게 되요. 이들이 취한 방식은 평화적 방식은 아니었어요. 이들은 비평화적, 여기저기서 폭탄도 터트리고 어디에서 전쟁도하고 비평화적인 방식, 혁명적 방식을 취하게 됩니다. 이때 등장한 것들이 청년아일랜드당, 아일랜드 공화국 형제단 등등이 등장을 하게 되는데요. 영국정부에서는 이들을 그냥 두면은 너무나도 크게 들끓었어요. 민족주의가 그러니까 한가지 이야기를 들어줍니다. 그 들어준 이야기는 뭐냐 토지문제는 해결해줍니다. 그래서 소작농은 자작농화되는 일연의 과정을 거쳐요. 토지법을 개정을 했기 때문에, 그래서 이제 토지문제는 해결이 됐어요. 토지문제는 해결이 됐으나 독립은 영국에서 바로 해결해주지 않습니다. 땅이 떨어져나가는 상황이 되기 때문에 영국에서 바로 해결을 해주지 않아요. 이제 그러면서 아일랜드사람들은 하난 얻었지만 하난 아직 얻지 못한 상황으로 19세기가 지나가게 됩니다. 자, 19세기가 지나가고 이 아일랜드사람들의 민족주의 정당이 지금까지도 유지되는 정당이 있습니다. 신페인당이라고 하는 신페인당이 20세기 초반에 등장을 하게 되고요. 그리고 이 신패인당에 물리적인 혁명을 지휘하는 IRA라는 단체도 등장하게 되요. 제가 아까 말씀드린 것처럼 IRA는 Irish Republican Army입니다. Army에요. 그래서 이 사람들은 폭력적으로 투쟁을 하는 이런 단체로 보시면 됩니다. 영국, 런던에서 봤을 때는 이들은 테러리스트라고 보시면 되요. 신페인당을 통해서 정치적으로 입장을 제기하구요, IRA를 통해서 혁명적인 투쟁을 진행하는 두 가지 트랙이라고 보시면은 됩니다.
영국과 아일랜드 자치
영국에서도 아일랜드가 너무 너무 시끄러워요. 그러다보니 아일랜드를 그냥 너네 자치해. 자치를 할 수 있게 해줄게. 하는 자치법안을 마련하기로 합니다. 자치법안을 마련을 하기로 했으나 1차 대전이 터지고요. 1차대전 와중이기 때문에 처리를 못해요. 처리를 하지 않고 있고. 그상태로 자치법안은 계속 계류하게 됩니다. 이 상황에서 신페인당에서는 하루라도 빨리 자치를 하고 그리고 이어서 독립을 하고 싶다. 라는 의지를 계속해서 표출을 하게 됩니다. 그 와중에 신페인 당원들이 의회에 진출을 하기 시작을 해요. 실제로 선거에서 당선이 되게 된 거죠. 이들이 의회에 진출을 하면서 더블린에서 아예 아일랜드 국민 의회라는 것을 개최를 하고 독립선언을 합니다. 우리는 저 쪽 UK에서 떨어져가지고 독립할거야. 라고 하면서 우리는 독립국가다 라고 선언을 하게 됩니다. 그치만 영국에서는 인정하지 않죠. 인정하지 않고 IRA와 영국군사의 전쟁이 발발하게 되요. 하지만 영국도 아일랜드를 계속 이대로 둘 수 없다 하는 것은 인정을 합니다. 그래서 1922년이 되면 영국과 아일랜드 사이에 조약을 하나 비준을 하는데요. 아일랜드 전체에 전부는 아니구요, 개신교도들이 많이 사는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자치령으로 분할을 해줍니다. 그래서 26개주는 자치령이 되고요 그리고 6개, 얼스터지역에 속한 6개 지역은 그대로 연합 왕국령으로 남게 되는 이런 조약을 만들게 됩니다. 이런 조약을 만들고 나자 아일랜드에서 독립을 하고자 했던 세력들, 특히 IRA내에서 이 조약을 우리가 그대로 받아 들이는 게 옳으냐, 그르냐를 가지고 다시한번 투쟁을 하게 되요. 내분이죠. 내분이 일어나게 됩니다. 내분이 일어나서 우린 이렇게 서라도 독립해서 자치해서 나가야해. 이렇게 일부만 나가는 건 의미가 없다. 라고 하는 두 쪽으로 나뉘게 되고요. 그 중에서 이렇게라도 나가야 된다라고 한다. 하는 찬성파가 승리를 하게 됩니다. 그래서 IRA는 자기네들끼리 내분으로 거의 괴멸되다시피 된다. 라고 보시면 은 되요. 그래서 1922년에 조약으로 인해서 아일랜드 지역의 대부분 지역은 올스터의 여섯 개의 주를 제외한 나머지 지역은 아일랜드자유국이라는 이름으로 떨어져 나가게 됩니다. 초기에는 자치하는 지역이었어요. 자치하는 지역이었으나 여기는 1937년에 아일랜드 자유국은 에이레라고 하는 이름으로 아예 독립을 해버리구요 이름을 49년에는 아일랜드로 변경을 합니다. 그리고 영연방에서 아예 탈퇴를 하는데요, 영연방이라고 하는 것은 영국에 식민지였던 국가들이 모여가지고 자기들끼리 만든 하나의 조직과 같은 모임이에요. 커머널스라고 하는 모임에서도 아예 우리는 영국이랑 이제 관계가 없어. 라고 하면서 탈퇴를 해버립니다. 그리고 UN에도 가입하고 EU에도 가입을 하면서 독립된 국가로 인정을 받게 됩니다. 그래서 아일랜드지역은 26개주 지역은 떨어져서 나와서 지금의 아일랜드를 구성을 하게 되고요 남은 지역이 어디냐 개신교도들이 많이 살고 이 사람들은 영국에 남는 것을 원해 그런 사람들이 많이 있었던 곳 북아일랜드 지역만 남아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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