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아일랜드 내전, 자치정부 출범, 향후 과제

북아일랜드 내전, 자치정부 출범, 향후 과제
북아일랜드 내전, 자치정부 출범, 향후 과제

북아일랜드 지역은 보시면요, 인구가 한 200만이 채 되지 않는 그런 지역이에요. 그런데 여기에 사는 사람들이 개신교도들이 많고 영국에 남고 싶은 사람들이 많아서 여기를 우리 영국에 남기겠어.라고 얘기를 하긴 했으나. 이 사람들을 보시면 거긴 카톨릭계도 꽤 많은 비중을 차지를 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카톨릭계, 그리고 아일랜드인, 자 이런 사람들도 꽤 많이 존재하고요 그리고 일부는 개신교계, 그리고 나중에 이제 들어온 사람들이죠. 그리고 영국인들, 나는 그리고 영국이랑 연합해 있는 게 좋아 라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리고 지금은 조금 시간이 지났어요. 북아일랜드가 따로 떨어져 나온 지 시간이 좀 지났기 때문에 백여 년 가까이 시간이 지났잖아요. 그러면서 이 사람들 사이에서 나는 이쪽이든 저쪽이든 상관없어.라고 하는 이런 사람들도 생겨나가고 있습니다. 그래서 북아일랜드산 사람들의 정체성을 보시면은 굉장히 스팩트럼이 한쪽에 강성해있었던 사람도 있으나 이제 아무것도 상관없어라는 사람도 조금씩 조금씩 늘어나고 있는 추세로 보시면은 됩니다. 자 이제 북아일랜드는 자기네들끼리 독립은 하지 못했고 아일랜드는 떨어져 나갔고 자신들은 계속해서 영국과 붙어서 살고 있단 말이에요. 영국에 하나의 지역으로 남게 되어있어요. 이제 그런데 북아일랜드 정부가 어떻게 했냐면요. 개신교도들의 비해서 카톨릭계를 계속해서 차별을 했어요. 이거는 이전부터 있었던 정책귀조였죠. 계속해서 가톨릭들을 차별을 합니다. 이것에 반대해서 가톨릭을 믿는 사람들 구교도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 이들이 반대하는 시위를 하기 시작을 합니다. 이것의 시작이 한 1968년쯤부터 시작이 돼요. 이들이 원했던 거는 우리는 개신교도들과 똑같은 권리를 원해요. 똑같은 시민으로서 대접받기를 원하는 거예요. 그래서 참정권, 공민권 같은 것들을 주장하기 시작해요. 이 사람들과 영국과의 대립을 가장 극명하게 보여주는 사건은 뭐냐면은 Bloody Sunday라고 불리는 사건이에요. 1972년에 벌어진 사건인데요. 구교도들이 모여서 평화시위를 합니다. 평화시위를 하고 우리도 개신교도들과 똑같은 권리를 줘. 하면서 시위를 하고 있는데 어느 순간엔가 영국군이 발포를 했어요. 영국군이 발포를 했고요. 그 발포로 인해서 시민이 13명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됩니다.

알린 대드와 영국의 갈등

영국 측에서 초기에는 너희들이 폭력적으로 시위해서 어쩔 수 없었어.라고 얘기를 했으나 이쪽에서 우리는 평화시위를 했는데 너희가 발포해서 무고한 시민이 죽었어.라고 얘기를 합니다. 이제 그러면서 아일랜드 사람들과 영국 사이에 갈등이 수면 위로 크게 드러나게 되고요. 거의 괴멸되었던 IRA도 다시 살아나기 시작해요. 이 IRA가 Bloody Sunday에 보복테러를 하게 됩니다. 그 해에, 1972년 7월이 되면 IRA가 다시 한번 폭탄 테러를 너희들이 Bloody Sunday를 버렸으니 우리도 거기에 대해 대응할 거야. 하면서 폭탄 테러를 하게 되고요. 이로 인해서 9명 정도가 사망하는 사건이 벌어지게 돼요. 이 두 가지 사건을 본 영국 정부에서는 북아일랜드는 너희는 스스로를 지배할 수 있는 그런 능력이 없어. 하면서 아예 의회를 해산시키고 직접 통치하는 방식으로 넘어가게 됩니다. 북아일랜드 입장에서 봤을 때는 더욱더 안 좋은 상황에 놓이게 되는 거죠. 그래서 이때부터 시작해서 1990년대 말까지 한 30여 년간이 IRA, 아일랜드 사람들, 아일랜드 민족주의자들 그리고 영국 정보, 그리고 북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개신교도들, 북아일랜드에 살고 있는 개신교도들도 신교도들도 구교도들이 계속해서 IRA로 테러를 한단 말이에요. 자기들 입장에서 봤을 때는, 이제 이 신교도들도 그것에 대항하는 의용군이라는 것을 만들어서 무력투쟁을 하기 시작을 해요. 이들 사이에 계속해서 피비린내 나는 싸움이 한 30여 년간 지속이 됩니다. 그 시기를 The trobles라고 불러요. 그래서 문제가 계속되던 시기를 한 30여 년 동안 거치게 되는데요. 이 30여 년의 트러블 시기를 끝낸 것은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입니다. Good Friday Agreement라고도 하는 평화협정인데요. 1998년에 영국 정부와 북아일랜드 사이에 이 협정이 체결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다음 해에 자치정부가 수립이 돼요. 이 북아일랜드 평화협정의 주요 안은 뭐냐면요. 신교와 구교 사이의 권력을 동일하게 공유하겠다는 거예요. 그래서 한쪽이 다른 한쪽을 견제할 수 있는 힘을 갖다 줄 수 있는 이런 협정이다. 이 안을 보시면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그리고 영국 사이에 이 삼자 간의 협력을 지속적으로 강조를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시민권 또한 북아일랜드, 아일랜드, 영국 자신들이 고를 수 있게 해 줘요. 아일랜드 시민권, 영국 시민권, 선택해서 가질 수 있게 하는 거기에다가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 자유 왕래를 허용을 해줍니다. 아일랜드는 이미 떨어져 나가서 하나의 국가가 됐지만 이 북아일랜드 사이에 국경을 차단하지 않겠다.라는 거죠. 그러면서 이 사람들이 기존의 자신들이 알고 있었던 이웃이나 자신들의 친척들과 쉽게 왕래할 수 있는 그리고 직장도 아일랜드 쪽에 가질 수 있는 이런 상황을 만들어 주게 됩니다. 그리고 이것은 국민 투표를 통과하면서 공식화 되게 되죠. 그 이후에 큰 문제는 없이. 물론 중간중간에 테러도 발생하기도 했고요. 중간중간에 이제 의회를 해산시킨다던지 이런 일들이 발생하기는 했으나 그 와중에도 신교도와 구교도 사이에 권력을 어느 정도 조절을 해가면서 평화적으로 북아일랜드가 운영이 되고는 있습니다. 그렇지만 지금 다시 북아일랜드 지역이 이제 떨어져 나가고자 하는 그리고 참 불안정해지는 요소가 발생했는데요. 스코틀랜드와 마찬가지로 브렉시트가 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브렉시트로 인한 분쟁

영국이 떨어져 나가게 되면 이제 EU에서 떨어져 나가는 거거든요. 아일랜드는 EU에 들어가 있어요. 아일랜드는 EU에 들어가 있는데 북아일랜드는 EU에서 떨어져 나가게 돼요. 그러면 기본적으로 같은 협정 안에 들어가 있지 않기 때문에 이 사이에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에는 국경이 그어져야 한다.라는 거예요. 이미 국경은 있었지만 이전에는 Soft Board였어요. 그냥 통과할 수 있는. 근데 이젠 Hard Board가 되게 돼요. 이 사람들이 이전에는 북아일랜드와 아일랜드 사이를 통과하는 도로만 해도 300개가 가까이되고요. 사람들이 지나가는 횟수만 해도 약 3만여 명이 매일매일 지나다닌다 해요. 그런데 여기를 다 검문을 해야 되겠다.라는 거죠. 그러면은 이걸 다 어떻게 처리를 하느냐. 모두 다 지나다닐 때마다 여권을 보여주면서 나가야 되고요. 또 사람 통행에도 문제가 생기고요. 또 물자 통행에도 문제가 생겨요. 우리가 사람이 돌아다니면서 물건을 또 가지고 왔다 갔다 하겠죠. 국경을 건널 때는 관세를 매겨야 되는 상황이 되는 거예요. 예전에는 같은 관세동맹이었는데 이젠 그게 아니란 말이에요. 그리고 어떤 데는 EU에 관리를 받고 다른 한쪽은 영국의 관리를 받아요. 똑같은 약이라도 어디선 허가가 되고 어디선 허가가 안 돼요. 그런데 내가 아일랜드에서 사서 영국으로 그냥 쑥 넘어가게 되면은 이건 불법을 저지르는 일이 되는 거죠. 이런 복잡한 일이 생기게 됐어요. 이렇게 되느니 그냥 다시 아일랜드에 들어가서 살까. 하는 생각도 할 수 있게 되는 거죠. 특히 민족주의자들 사이에서는 우리는 영국에 남느니 EU에 남는 게 더 낫지 않겠니.라고 하는 이런 의견도 있게 됩니다. 그러면서 다시 한번 북아일랜드에서 어떻게 상황이 진행될지는 지켜봐야 될 것으로 보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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