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리독립을 시도하는 스코틀랜드
스코틀랜드의 상황을 보겠습니다. 스코틀랜드는 스코트인의 땅. 이라고 하는 스코티아라는 마을에서 유래한 그런 단어로 보시면 됩니다. 지명이에요. 스코틀랜드. 근데 이 사람들은 여기에 주류를 이루었던 사람들은 누구였나면은 켈트계에요. 켈트계들이 여기 스코틀랜드 지역에서 계속 살고 있었단 말이에요. 자, 이제 그런데 앵글족과 색슨족들이 들어와서 자기네들이 여기를 합병을 해버린거죠. 왕족들은 이쪽 잉글랜드쪽과 거의 혈통적으로 거의 유사한 사람들이 계속 이 지역을 점령을 하고 있었던거에요. 그러다가 1603년이 되면은 아예 잉글랜드와 하나의 왕을 섬기게 되는 상황이 되어버리죠. 자, 여러분 스코틀랜드 가시면은 그냥 영어쓰시면은 다 통합니다. 이 사람들 억양이 잉글랜드사람들이랑 약간 다르긴 하지만 스코틀랜드가면 그냥 다 영어 쓸 수 있어요. 그치만 이 사람들이 원래 쓰던 말은 이제 영어는 아니었겠죠. 이 영어는 잉글리쉬죠, 잉글랜드 사람들이 쓰는 말이에요. 자, 이제 이사람들은 원래 스코트어도 있었구요 원주민들이 쓰는 게일어도 사용을 했었는데 이 게일어와 스코트어 같은 경우에는 거의 사멸했다시피 되었다. 라고 보시면은 됩니다. 이 게일어가 사멸하게 된 원인은 가장 큰 것은 일단 지배계층이 잉글랜드 주류였다. 라고 보시면은 되요. 주류 언어가 잉글랜드의 언어인 잉글리쉬에요. 이제 그러다보니 주류계층에 속하기 위해서는 잉글리쉬를 사용할 줄 알아야 해요. 거기에다가 구텐베르크가 활판 인쇄술을 보급을 하기 시작을 하면서 이제 성경책이 보급이 되기 시작을하죠. 이제 성경책. 활자로 찍어놓은 문자가 여기저기 퍼지기 시작하는데. 스코트랜드같은 경우에는 영어를 쓰는 사람들이 이미 많아요. 거기에다 게일어를 쓰는 사람들은 별로 없단 말이에요. 이제 그래서 성경책을 그냥 영어로만 찍어서 이 스코틀랜드 지역의 다 보급을 시켜버렸어요. 스코트랜드의 영어성경책이 보급이 되면서 사람들은 문자라는 것은 잉글리쉬로 인지를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스코틀랜드사람들은 거의 대부분이 다 잉글리쉬를 사용하게 되는 그런 상황에 놓이게 되요. 스코틀랜드의 지형은 일반적으로 영국 사람들은, 그냥 하일랜드라고 부릅니다. 높은 땅이죠. 고지대를 많이 가지고 있는 지역이 저 스코트랜드라고 보시면 되는데요. 저 고원이 전체 지형의 3분의 2정도를 차지를 합니다. 그러다보니 영국이라는 땅 자체가 농사짓기 딱 좋은 땅은아닌데 여기는 더욱 더 농사짓고 편하게 살기는 농경이 적합한 그런 지형은 아니라고 보시면 됩니다.
스코틀랜드의 역사
스코틀랜드의 역사를 보시면요, 여기에는 기도교가 기원 후 한 4세기경 쯤 되면은 들어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러면서 이제 이 사람들 기독교를 믿기 시작을 하구요. 스코틀랜드에 있던 작은세력들을 11세기경이 되면은 맬컴2세가 다 통합을 시켜버러요. 그래서 스코틀랜드라고 하는 하나의 정체성을 가진 지역으로 통합이 되긴 하는데 이 스코틀랜드가 잉글랜드와의 전투에서 패하면서 잉글랜드의 영향권에 놓이게 되요. 식민지가 되었다라는 것은 아니구요. 잉글랜드를 형님으로 모시는 상황정도로 보시면은 됩니다. 잉글랜드의 영향권에 놓여있었으나 잉글랜드는 여기를 계속해서 자신의 종속국가로 만들고 싶어합니다. 계속해서 침공을 하고 그 와중에 민족적인 영웅이 한명 등장을 하게 되죠. 이제 좀 오래된 영화이긴 한데요, 1995년도에 개봉한 브레이브하트라는 영화가 하나 있습니다. 아카데미 작품상도 받은 이런 작품인데 그 한번 보시면요 스코틀랜드의 지형도 굉장히 쉽게 이해를 할 수 있어요. 그 고지대라는 것이 어떤 지형인지 보실수도 있고 잉글랜드가 어떻게 스코틀랜드 사람들을 핍박을 했는지도 확인을 할 수가 있는데요. 거기 주인공이 어떤 윌리엄 윌리스라는 분이 계십니다. 이분이 활약을 하면서 한번에 스코틀랜드를 꿀꺽 하고 삼키지를 못해요. 하지만 윌리엄월리스는 애드워드 1세가 다시 잡아 가면서 런던에서 처형을 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이 스코틀랜드는 거의 잉글랜드의 손안에 넘어가게 되었다. 라고 보시면은 됩니다. 그러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1600년대가 되면은 스코틀랜드의 왕이 잉글랜드의 국왕을 겸직하게되면서 통합하게 되는 이런 과정을 거치게 되요. 우선 여기는 1600년대부터 계속 통합되어서 있었어요. 잉글랜드랑 통합해서 통합왕국으로 살고 있었는데 이들이 분리독립에 대한 의식이 높아지기 시작한때가 언제냐면은 19세기 쯤으로 보시면 됩니다. 그래서 민족자결주의 막 이런 것들이 많이 등장하던 시기이도 하구요. 그러면서 우리도 웨스트멘스터, 런던이랑은 다른 사람들인데 라는 것을 인지하기 시작하고 그것을 표출을 하기 시작합니다. 더군다나 일차대전 이차대전을 거치면서 영국의 식민지였다 라고 했었던 그런 지역들 하나씩 다 독립을 해나가거든요. 그러면서 우리도 분리 독립을 할 수 있지 않을까. 라는 이런 생각을하기 시작을 하고 그것을 추종하는 민족주의 정당도 등장하기 시작을 합니다.
경제와 스코틀랜드 독립
스코틀랜드가 이 상황에서도 독립을 해야 되겠다. 본격적으로 생각을 하게 된 이유는 경제적 이유가 굉장히 큽니다. 1970년대에 들어가게 되면은 1970년대를 생각해보시면 서구의 선진산업들은 산업화의 마지막단계라고 보시면 돼요. 산업화가 거의 다 끝났구요. 이제 공장들은 다시 어디로가냐면 인건비가 싼 지역으로 넘어가게되죠. 근데 스코틀랜드는 철강이나, 조선업 같은 지금 우리나라나 중국같은 지역에서 굉장히 강세를 보이는 산업이죠. 이런 중공업이 매우 발달한 지역이었어요. 여기는 항만도 좋고 지하자원이 좋았기 때문에 이런 중공업 위주의 성장을 해왔었는데 70년대 쯤되면은 공장이 하나둘씩 빠져나가기 시작을하죠. 석유파동도 거기에다 겹치기 시작을해요. 이러면서 스코틀랜드 경제화가 굉장히 안좋아집니다. 그때 당시에 총리가 누구냐였나면은 대처총리에요. 대처총리는 미국에 레이건대통령과 신자유주의를 표방한, 그래서 신자유주의를 끌어나갔단 그런 지도자였기 때문에 시장이 그렇게 돌아갔어요. 시장이 그렇게 돌아가면은 어쩔 수 없지 시장이 그렇게 돌아갔으면은 시장에게 맡겨야 되는거야. 하고 아무런 대응도 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이 스코틀랜드 사람들은 영국정부에 대해서, 런던 정부에 대해서 굉장히 불만을 가질 수 밖에 없게됩니다. 정부에 굉장히 경제적으로 불만을 가지고 있는데. 여기 부캐, 스코틀랜드가 끼고 있는 부캐에서 유전이 터집니다. 경제적으로 우리는 여기에서 이득을 볼 수 있어요. 근데 여기에 잉글랜드랑 웨일즈랑 다 같이 나눠 가져야 한단 말이에요. 우리는 경제적으로 산업을 이뤘지만 북해유전을 가졌단 말이에요. 저 위에는 근데 이걸 또 나눠가져야돼. 여기에서 또 다시 불만이 생기기 시작해요. 우리는 북해유전을 가지고 자립할 수 있을거야 라고 생각을 하기 시작을 하는거죠. 이제 이러면서 스코틀랜드 사람들이 우리도 독립할 수 있지 않을까 독립을 해야하지 않을까, 라는 이런 당위성을 하나씩 하나씩 쌓아가기 시작을 합니다. 그때 많이 역할을 한게 이들의 민족주의 정당이라고 불리는 SNP, Scottish National Party 인데요. 스코틀랜드 민족당이라고 번역을 하기도 합니다. 이 스코틀랜드 SNP주도로 해서 1999년이 되면 스코틀랜드에서 자치의회를 부활시킵니다. 우리는 우리끼리 자치를한다. 런던에서 너희들 할 것은 뭐냐 국방이랑 외교, 나머진 다 우리가 할거야 라고 하면서 스코틀랜드가 자기들끼리 알아서 살아가는 이런 모습을 보이기 시작을 하는데요. 이이전까지만 하더라도 1990년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SNP가 크게 부각됐었던 이런 정당은 아니에요. 하지만 이 정당이 계속해서 민족 주의를 주장을 하고 분리 독립을 70년대부터 계속해서 주장해온 정당으로 보시면 됩니다. 근데 이 70년대를 거치고 시간이 지나고 지나서 다시 2008년에 다시 한번 경제 위기가 오잖아요. 이런 사건을 겪으면서 민족주의가 점점 더 드세지기 시작을 해요. 거기에다가 SNP는 점점 자신들의 정치적 영향력을 높여갑니다.
스코틀랜드의 지속적인 독립 주장과 투표
2007년에는 총리도 배출하고 스코틀랜드 내에 총리도 배출을 하구요, 2011년에는 결국에는 다수당이 되기까지 합니다. 그래서 SNP 민족주의정당이 스코틀랜드에 다수를 점유를 했어요. 자기들이 의결을 해서 뭔가 결정을 할 수 있는 그런 위치에 올라가게된거죠. 자, 그런데 런던정부에서는 계속해서 2008년 경제위기 이후에 긴축정책을 하라고 스코틀랜드에 얘기를 합니다. 스코틀랜드는 거기에 대해서 반대해요. 우리는 그럴 필요가 없어 라고 계속 얘기를 하나 런던에서 긴축 정책을 쓰라고 계속 얘기를 해요. 그래서 더 이상은 같이 못가겠어라고 하는 결론을 내리게 되자, 이 스코틀랜드에서는 우리 그러면은 분리독립을 위한 주민투표를 실시할게. 이걸 너희가 인정해줘. 라고 런던에다가 건의를 합니다. 그런데 런던에서는 일방적으로 중앙정부에서는 이런 주민투표를 허가를 잘 안해줍니다. 이걸 해서 진짜로 독립해서 나가면 안되잖아요. 이걸 합법적인 선거라고 인정을해 주는 순간 이 결과는 유효하게 되기 때문에 이걸 인정을 잘 안해주는데 웬일인지 중앙정부에서 이것을 받아줍니다. 독립이 안 될 거라고 생각을 했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이걸 받아 주고 나서 2013년에는 너네 진짜 투표해서 나갈 수 있는지 보자. 너희들이 나갈 수 있으면 나가. 라고 얘기를 합니다. 그리고 그게 스코틀랜드를 다시 통과를 하게 되고요. 2014년에 실제로 주민투표를 실시를 하게 되죠. 초창기에는 그래 독립투표, 그래 가결, 독립투표 해 그리고 그 캠페인 와중에는 처음에는 별 생각이 없었어요. 아 독립을 하겠어? 라고 하는 이런 생각을 가지고 있었는데. 진행이 되고 되고 되면서부터 독립을 하겠다는 사람들이 절반이상으로 나타나는 이런 설문조사 결과도 나오기 시작을 하구요. 여기서 깜짝 놀란 영국정부에서 영국 정부에서 영국 카메란 총리가 직접 스코틀랜드에 가기도 하고 여왕님이 스코틀랜드에가서 우리는 함께해야한다. 하는 메시지를 전하기도 하는 끝에는 굉장히 다급해진 모습을 보입니다. 그치만 결과적으로 독립투표 결과는 부결됐어요. 부결됐구요. 55 대 한 45 정도로 부결이 됩니다. 그래서 이들의 요구는 다시 수면 아래로 가라앉았는데 스코틀랜드가 다시 우린 SNP에서 우린 다시 독립투표 할거야. 라고 얘기를하기 시작한 것은 언제냐면은 브렉시트가 확정이 된 이후에요. 영국이 우리는 EU를 떠나겠어. 라고 하면서 영국 내에서 투표를 하죠. 그때 스코틀랜드는 EU에 남겠다. 라고 하는 것이 다수표였어요. 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일랜드, 북아일랜드, 그리고 런던지역 이 세곳에서는 우리는 EU에 남겠어. 라고 얘기를 하고요. 다른 지역은 그냥 우리는 EU를 떠나도 돼. 라고 하는 투표결과가 나왔다라는 것을 그냥 간단하게 보실 수가 있었어요. 스코틀랜드는 남고 싶었어요, 스코틀랜드는 남고싶었는데 전체적인 결과는 떠나겠다는 거잖아요. 그렇기 때문에 SNP에서는 계속해서 우리는 이런 결과면은 EU에 남아있는게 낫지, UK에 남아있는거보단 EU에 남아있는게 더 나. 라고 하면서 다시 주장을 하면서 언제 다시 또 독립을 위한 투표를 준비할지 모르는 상황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유럽 역사, 동아시아 역사, 문명 충돌 역사' 카테고리의 다른 글
750여 년 잉글랜드의 지배를 받은 '슬픈 아이리시 땅' (0) | 2022.07.25 |
---|---|
북아일랜드 내전, 자치정부 출범, 향후 과제 (0) | 2022.07.25 |
감자대기근과 민족주의 운동의 등장, 에이레 독립 (0) | 2022.07.24 |
신장웨이우얼 지역의 분리주의 운동 (0) | 2022.07.24 |
소수민족 분포와 중국 정부의 소수민족 정책 (0) | 2022.07.24 |